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레이테 만 해전 (문단 편집) === 양측의 피해 === 이 전투의 의의는 홀시가 낚였느냐, 구리다가 오판을 했느냐 정도가 아니다. 이 전투로 인해서 [[일본군]]은 해상전력이 사실상 와해될 정도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이 전투에서 일본군이 입은 손실은 아래와 같다. * 정규항공모함 [[즈이카쿠]] 1척. * 경항공모함 [[즈이호]], [[치요다]], [[치토세]] 3척. * 전함 [[무사시]], 후소, 야마시로 3척. * 중순양함 [[타카오급 중순양함]] 아타고, 마야, 쵸카이, [[모가미급 중순양함]] 모가미, 스즈야, [[토네급 중순양함]] 치쿠마 6척. * 경순양함 노시로, 아부쿠마, 타마, 키누 4척. * 구축함 와카바, 미치시오, 아사구모, 야마구모, 아키즈키, 하츠즈키, 하야시모, 노와키, 우라나미 9척. * 항공기 500대 이상. * 사상자 40000여명 반면 미군의 손실은 다음과 같다. * 인디펜던스급 경항모 프린스턴 * 카사블랑카급 호위항모 갬비어 베이, 세인트 로(카미카제 특공으로 인한 격침) * 플래처급 구축함 호엘, 존스턴 * 존 C. 버틀러급 호위구축함 새뮤얼 B. 로버츠 *사상자 5000여명 1944년 봄까지만해도 일본 해군은 그동안의 상당한 손실에도 불구하고 외형상으로나마 전력은 어찌저찌 유지하고 있었다. 일본해군은 1944년 3월 말 각종 군함[* 전함, 항모, 순양함, 구축함, 잠수함, 수상기모함, 잠수모함, 포함, 해방함, 기뢰부설함, 수뢰정] 280척 총 117만 4,710톤(개전 당시의 92.6%)의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개전 당시 일본해군은 군함 291척 총 126만 7,550톤을 보유했고 [[미드웨이 해전]] 직전인 1942년 6월초에 함정보유량이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미군이 태평양에서 본격적인 공세에 나선 1944년 하순부터는 주력 함정 손실이 급증하였다. 앞서 [[필리핀 해 해전]]과 레이테 만 해전을 거치며 일본 해군의 손실은 건조량을 아득히 멀리 앞질러나갔고 '''일본 해군 자체의 전면적인 붕괴'''가 시작되었다. 레이테 만 해전 기간인 1944년 10월 23일부터 28일까지 일주일이 채 안되는 기간 동안 일본 해군은 군함 32척[* 전함 3척, 항모 4척, 순양함 10척, 구축함 11척, 잠수함 4척] 30만 3,600톤을 한꺼번에 상실하여 그야말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1944년 12월 말에는 함정보유량이 250척 68만 2,050톤(개전 당시의 53,8%)으로 급감했다.[* 필리핀 해 해전과 레이테 만 해전에서의 참패에도 불구하고 일본 해군은 1944년 내내 필사적으로 함정을 확충했다. 결과적으로 두 해전 이전과 비교하여 함정보유랑은 척수로 30척이 줄어든 것에 그쳤다. 하지만 톤수로는 무려 50만톤 가까이 줄어들었다. 1944년에 지금까지 아껴두었던 대형함을 잇달아 손실했으나 신규 취역한 대부분의 함정은 구축함, 잠수함, 해방함에 집중되었기 때문이었다.][* 야마다 아키라(山田朗);윤현명 역, ''일본, 군비확장의 역사'': 일본군의 팽창과 붕괴(軍備拡張の近代史 :日本軍の膨張と崩壊), (서울:어문학사, 2019)] 일본해군은 그 동안 누적된 피해와 더불어 이 해전으로 인해 받은 치명상을 결코 극복하지 못했다. 레이테 만 해전 이후 제대로 된 해상 작전을 벌이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전함 6척, 경/중순양함 10척을 포함한 일본의 일부 수상함들은 미군 지휘관 홀시의 오판에 힘입어 격침되지 않고 퇴각하는데 성공했으나, 후퇴 과정에서 전함 공고, 중순양함 나치, 중순양함 쿠마노, 구축함 우라카제 등이 추가로 격침되었다. 일본과 동남아시아 간의 연결이 끊어진 탓에 상당수의 배가 동남아에 고립된 것도 뼈아픈 일이었다. 제대로 된 수리를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겨우 살아 돌아간 묘코급 중순양함 묘코와 타카오급 중순양함 타카오는 싱가포르까지 견인받았지만 수리하러 본토로 귀환할 수가 없어서 부양방공포대업무만 하다가 종전을 맞았다. 묘코급 중순양함 4번함 하구로는 싱가포르에서 보급 임무 중 [[페낭 해전]]에서 격침되었다. 레이테 만 해전에서 일본의 수상함 전력이 '괴멸'적인 피해를 입었다고 선언할 수 있는 것은 당시 일본 연합함대 사령장관이었던 도요다 소에무 제독이 전후 미군 조사관에게 한 다음의 진술에서 드러난다. ||만일 일본이 필리핀을 상실하게 되면, 일본 본토와 남방의 자원지대는 완전히 분리될 수 밖에 없다. 이 경우, 함대가 본국에 있는 경우 연료를 공급받을 수 없고, 남방 해역에 있을 경우 본토로부터 탄약 및 기타 보급을 받을 수 없게 된다. 따라서, 필리핀을 상실하면서 함대를 보존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실제로 이 전투 이후 살아남은 일본 함정 대다수는 항구에 정박해 있는 상태에서 차례차례 미군의 공격으로 파괴된다. 또한 미군은 더 이상 일본 해군의 활동을 두려워할 필요 없이 자유롭게 작전을 전개할 수 있게 되었다. 결국 이 전투는 미군의 필리핀 상륙을 막지 못한데다, 엄청난 피해를 입었으니 '''전략적(미군의 필리핀 탈환을 저지)으로도 전술적(레이테 만에 상륙한 맥아더의 6군에게 함포사격)으로도 일본군의 완전한 참패로 끝났다.''' 그런데 [[연합함대]]는 (전투에 참가한 부대원들의 과장된 보고를 그대로 믿고) 자신들이 7척의 미군 정규항모를 격침시켰다고 발표하고는, 레이테 섬에 병력을 증원하기 위해 수송작전을 개시하게 된다. 일명 [[아오바(중순양함)#s-2.12|오르목 만 전투]](다호작전)으로, 이 작전에 참가한 함선들은 당연히 살아남은 미군의 공격으로 큰 손실을 입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